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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기부보다 고용 창출’ …무료 모바일 교육프로젝트 발표한 카를로스 슬림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민상식 기자ㆍ김세리 인턴기자] 멕시코에서 가장 부자이자 현재 세계 4위 부자인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ᆞ76)이 무료 모바일 교육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멕시코가 당면하고 있는 ‘낮은 교육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차원이다. 저속득층의 교육 강화를 위해 기부하는 다른 서방의 부호들과는 달리 직접 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나섰다. 그저 돈을 주는 형태의 기부는 실효성이 낮다는 슬림 특유의 철학이 담겼다.

지난 16일 멕시코 언론들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슬림은 무료 교육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아쁘렌데(Aprende)’ 출시를 발표했다. 아쁘렌데는 모바일을 통해 교양·예술·직업훈련 등의 교육 콘텐츠를 멕시코인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아쁘렌데는 스페인어로 ‘배우다’란 뜻으로, 기본적인 교양과 지식을 맥시코의 보통 청소년층에게 더 보급하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슬림은 이 앱을 위해 새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대신 비영리 교육 웹사이트인 ‘칸 아카데미(Khan Academy)’의 교육과정을 모바일 속에 옮겨 놓았다. 

수학, 과학, 역사, 예술, 컴퓨터 프로그래밍, 경제학 등 칸 아카데미가 제공하는 무료 온라인 강의 내용들이 아쁘렌데를 통해 똑같이 제공된다. 이날 발표회견은 소우마야 미술관에서 열렸다. 그가 사별한 부인의 이름을 따 만든 자선 목적의 미술관이다. 세계적 작가의 예술작품 6만6000점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그는 아쁘렌데 출시에 대해 “멕시코로선 중요한 시도가 될 것이고 다른 나라들엔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카를로스 슬림

슬림은 2013년 살만 칸(Salman Khan) 칸 아카데미 창립자와 공동협약을 맺은 이래로 아쁘렌데 출시를 위한 물밑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특히 멕시코 학생과 교육 관계자들이 칸 아카데미 사이트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전 교육과정을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는데, 칸 아카데미의 접근성과 이용률이 곧 아쁘렌데 접속률로 이어질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사이트는 현재 39개 언어로 기본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학습은 주로 스페인어와 영어를 통해 가능하다.

멕시코 정부도 슬림의 계획에 화답하고 나섰다. 아쁘렌데를 통한 학위취득제도를 승인했다. 아쁘렌데가 침체돼 있는 멕시코 청년층의 교육문제를 해결할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멕시코 교육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아쁘렌데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은 일반 대학 졸업자들과 똑같이 학위를 부여 받을 수 있다.

칸 아카데미 한국어판 웹사이트

슬림이 이렇게 교육문제에 열을 올리는 데는 멕시코의 문제점 중 하나인 교육의 낮은 접근성이 자리잡고있다. 교육이 4대 의무에 들어가는 우리와 달리 멕시코에선 그저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때문에 형편이 조금 어려운 학생들은 배우려하기 보다는 어린나이부터 생업활동에 나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하는 34개국 중 멕시코는 15세에서 29세의 노동 인구가 학업 인구보다 많은 유일한 나라다. 15세에서 29세 사이 멕시코 국민의 노동률은 20%를 넘어간다.

하지만 이런 사실 외에도 슬림의 아쁘렌데 출시에는 중요한 사안이 하나 더 들어가 있다. 대규모 자선재단을 통한 기부보다 실제로 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진짜 ‘기부’라는 슬림의 확고한 신념이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등 수조원대의 자산을 보유한 다른 부호들이 자선재단을 통한 거금의 기부로 사회 발전에 손을 보태는게 일반적이라면, 슬림은 이를 탐탁찮게 여긴다. 그는 ‘기빙플레지’와 같은 자선기부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대표적인 한 사람으로 꼽힌다. 재단을 통해 어마어마한 모금액이 여러곳으로 그저 나누어 전달되는 기부형태에 대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자선 단체는 결코 가난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재단을 통한 일시적인 보조가 결코 가난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슬림은 ‘고용’을 문제해결의 핵심으로 내건다. 고용이 늘어나 일하고 돈 벌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그 해답이라는 이야기다. 아쁘렌데는 그의 신념이 반영된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아쁘렌데

아쁘렌데는 우선적으로는 슬림이 소유한 멕시코 최대 통신사인 텔셀과 아메리카 모바일 등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다른 통신사 이용자들은 이용을 위해 소정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때문에 결국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식 기부가 아니냐며 비판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하지만 슬림은 “다른 통신사들도 제2의 아쁘렌데와 같은 무료서비스를 차차 내놓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부호들의 재단 참여에 대해선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지만, 사실 슬림은 이미 비영리 재단을 3개나 갖고 있다. 물론 그의 재단은 상대적으로 존립 목적과 기부 대상에 대해서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3개의 재단 중에서도 이번 아쁘렌데 출시를 주도적으로 이끈 카를로스 슬림 재단은 예술과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재단을 통해서만 40억달러를 기부하는 등 슬림은 2011년 가장 많이 기부한 명단 5위에 발표되기도 했다.

카를로스 슬림 재단을 통해 ‘다른 방식’의 교육 자선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버려진 전자기기들을 고쳐 필요한 곳에 기부하는 일종의 ‘재활용 기부’다. 더 이상 쓰지 않는 휴대폰 등의 전자기기를 가진 사람들이 500페소(약 26달러)를 받고 물건을 재단에 팔면, 재단이 버려진 기기의 부품을 재활용해 다른 전자기기를 생산한 후, 재탄생 된 기기들을 공공기관과 대학 등에 기부한다.

슬림은 국민들의 교양을 높이고자 하는 활동도 벌이고 있다. 이번 기자회견이 이뤄진 멕시코의 소우마야 미술관은 로댕, 다빈치, 피카소, 르누아르, 고흐, 달리 등 15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작가들과 디에고 리베라 등 멕시코 대표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것으로 입장비를 일절 받지 않는다. 슬림은 멕시코시티의 ‘인문주의적인 자산’을 늘리고자 한 시도라며, 유럽으로 여행할 수 없는 수많은 멕시코인들을 위한 컬렉션이라고 설명한다.

슬림은 카르소 글로벌 텔레콤과 아메리카 모바일 등을 포함한 텔멕스 그룹을 소유 및 경영하고 있다. 아메리카 모바일의 계열사인 텔셀의 멕시코 내수 시장 점유율은 70%에 이른다. 이 외에도 금융업, 항공, 건설, 운송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 진출하여 멕시코 GDP의 5%에 해당하는 생산량을 모두 자신의 기업에서 내고 있다. 멕시코를 ‘슬림제국’이라고 비아냥대는 전문가들이 있을 정도다. 현재 그의 자산은 503억달러로 포브스 기준 세계 4위에 올라 있다.

ser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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