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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미국판 신격호 사건’ 치매회장 서명 대필 논란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홍승완 기자]롯데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형제간 분쟁’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치매 여부가 관심사다. 특히 롯데그룹의 각종 비리와 관련해 검찰수사가 진행되면서 신 총괄회장의 치매 여부는 더욱 중요한 변수가 되는 양상이다. 신 총괄회장이 2010년부터 치매 증세를 보였다는 사실이 입증될 경우 검찰 수사의 방향이 신 총괄회장보다 당시 실질적으로 그룹을 경영하고 있었던 신 회장에게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구순이 넘은 회장의 치매여부에 여느때보다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비슷한 일이 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주인공은 미국 최대 방송ㆍ통신 대기업 중 하나인 비아콤(Viacom)의 오너인 썸너 레드스톤(Sumner Redstone) 회장이다. 1923년 생으로 우리 나이로 94의 고령인 레드스톤 회장은 비아콤을 CBS방송, 파라마운트 픽처스, MTV 등을 거느린 미국 대표 통신 미디어 업체로 키워낸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가 중의 한 사람이다. 포브스가 추산하는 자산이 53억달러, 우리돈 6조5000억원에 육박할 정도의 거부다. 
 
미국을 대표하는 미디어기업 비아콤의 썸너 레드스톤 회장

하지만 그는 지난 5월부터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정확히는 그의 딸이자 비아콤의 부회장인 샤리 레드스톤이 당사자다. 다툼의 대상은 비아콤의 전직 최고 경영자(CEO)인 필립 다우만과 조지 에이브러햄 이사다.

사건의 배경은 이렇다. 지난 5월 레드스톤 회장은 다우만과 에이브러햄 두 사람을 갑작스럽게 해임했다. 경영 능력 부족이 이유였다. 다우먼과 에이브러햄은 미국 내에서도 연봉을 가장 많이 받는 경영자, 기업임원 중 한 사람이었다. 다우먼의 경우 2014년에는 3718만(430억원)달러를 연봉으로 받아 S&P500 기업의 CEO 가운데 가장 돈을 많이 받은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 

갑작스런 해임으로 소송에 나선 필립 다우먼 전 비아콤 CEO

갑작스런 해고 통보에 두 사람은 가만있지 않았다. 메사추세츠주 법원에 해임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자신들이 경영을 특별히 잘 못하지 않았는데 해임이 이뤄졌고, 그 배경에 썸너 회장의 딸인 샤리 부회장이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썸너 회장이 고령으로 언제 명을 다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창업자가 사망 또는 무능력 상태에 직면할 경우 소유주식의 80%를 행사할 수 있는 이사회를 딸이 장악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게 요지다. 

해임 소송의 당사자가 된 샤리 레드스톤 비아콤 부회장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은 “사실상 썸너 회장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치매와 인지능력 저하, 기억상실 등으로 정상적인 판단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물론 샤리 부회장을 비롯한 썸너 회장 일가는 “그정도까진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후 양측은 언론플레이 등을 통해 긴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흥미로운 정보가 하나 공개됐다. 바로 썸너 회장의 서명이다. 썸너 회장이 이미 중요한 문서에 서명하기조차 무리인 상황인데, 한 술 더 떠 그 서명 마저도 썸너 회장이 아닌 샤리 부회장이 대필 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2007년 비교적 건강하던 당시 썸너 회장의 서명

실제로 미국의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Business Insider)’가 최근 공개한 썸너 회장의 ‘서명 변천사’는 여러가지 추측을 낳을 모양새다. 2007년만 해도 비교적 ‘서명’ 같아 보이던 썸너 회장의 싸인은 2014년을 기점으로 알아보기 힘든 형태로 변한다. 서명을 했다고는 하지만 획들이 다 끊어져 있고, 글자같아 보이지 않는다. 

2014년경 작성된 문서에서의 썸너 회장의 싸인. 정상적인 서명이라고 보기 힘들다

2015년 싸인부터는 사실상 썸너 회장이 집무를 볼 상황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싸인 대신 길게 선을 늘여뜨린 모양의 흔적을 남겼는데 그마저 서명란을 훌쩍 넘어가 늘어져 있다. 

2015년 작성된 문서에 보이는 썸너 회장의 싸인. 펜을 쥐기도 힘든 상황으로 보인다.

하지만 논란의 핵심이 되는 것은 올해 이뤄진 싸인들이다. 특히나 다우먼과 에이브러햄을 해임하는 내용을 담은 서류의 싸인부터가 문제다.

공개된 문서를 살펴보면 역시나 서명란에는 정상적인 싸인이라고는 볼 수 없는 선이 하나 표시돼 있다. 중간에 살짝 굴곡이 져있기는 하지만 그냥 우측으로 늘어뜨린 선에 불과하다. 처음으로 펜을 쥔 아기가 장난으로 남긴 선 같다. 일주일 뒤에 작성된 주주들에게 보내는 문서의 싸인도 비슷하다. 역시나 아기가 펜을 쥐고 낙서한 것 같이 긴 선이 늘어져 있을 뿐이다. 

6월 20일경 작성된 문서. 싸인으로 보기는 힘들지만, 전년에 비해서는 선이 깔끔해졌다.

그런데 다우먼과 에이브러햄은 이 두 문서의 싸인이 썸너 회장의 것이 아니라고 언론을 통해 우회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2014년 정도에 비해 선이 오히려 깔끔해졌다는 이유에서다. 아버지의 ‘치매서명’을 샤리 부회장이 한 것이 아니냐는 쪽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가장 최근인 6월 28일경에 작성된 문서에서의 싸인. 서명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역시나 전년에 비해 선이 깔끔하다.

이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사건은 썸너 회장이 정상적으로 경영할 능력이 있느냐를 넘어, 샤리 부회장이 아버지의 이름을 대신해 각종 문서를 허위로 작성한 것이 아니냐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법원이 썸너 부회장을 증인으로 법정에 세워 실제로 서명을 해보게 할지도 관심사다.

sw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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