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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통통한 몸 감추지 마세요” 美 란제리업계 흔드는 ‘당당한’ 새 바람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천예선 기자ㆍ김세리 학생기자]“아무리 많은 맥앤치즈를 먹어도 당신의 란제리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한 속옷 회사 SNS계정에 올라온 글이다. 예쁘고 날씬한 몸매를 원하는 여성 고객들을 위해 더 성능 좋은 ‘보정용 란제리’를 만들기도 바쁜 이때, 폭식을 권유하는 속옷 회사라니 언뜻 희한하게 들린다.
어도어미(Adore Me)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글

하지만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미국의 여성 란제리 시장 규모는 연간 150억달러, 중국의 경우 200억달러가 넘어간다. 시장 규모는 해마다 3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세계적 경제불황에도 ‘보이지 않는 미(美)’를 추구하는 여성들의 욕망은 수그러들기는커녕 더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나날이 커지는 란제리 산업의 대세가 최근 바뀌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보다 날씬하게 보이려는 보정 속옷 대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실은 속옷 회사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란제리 업계에 분 새로운 세대교체 현상에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최근 몇 년 새 등장한 속옷 회사들은 빼빼 마른 모델을 사용하는 대신 통통하고 현실감 있는 모델을 내세워 여성 고객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받고 있다.
어도어미의 플러스 사이즈 광고 모델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 중 하나가 ‘어도어미(Adore Me)’, 우리 말로 “자신을 사랑하라”는 이름을 가진 속옷 업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판매 방식으로 작년 순수익 4300만달러를 달성하며 2015년 미 경제전문지 Inc. 매거진이 선정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 1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어도어미는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외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빅토리아 시크릿을 끌어내려 퇴출시키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연 매출 77억달러로 란제리 업계 독보적 1위를 차지하는 기업이다.

2010년 출범한 어도어미는 자신의 신체에 딱 맞는 사이즈와 개인적 취향이 담긴 스타일 등 소비자의 ‘기호’에 초점을 맞춘 온라인 베이스 업체다. 보정 속옷은 일절 제공하지 않는다. 특징은 최근 전통 명품 패션업계에 불고 있는 ‘패스트패션(최신 트랜드를 즉각 반영해 빠르게 제작·유통시키는 의류)’을 끌고 들어온 것이다.

어도어미는 월 패키지 프로그램을 통해 한 달에 한번 구독을 신청한 고객에게 상하의 속옷 한 벌을 39.99달러(4만원)에 제공한다. 유행하는 스타일을 그때그때 놓치지 않고 즉각 반영해 소비자의 마음을 사겠다는 어도어미만의 특별한 구매 방식이다. 마케팅 담당자는 “현재 란제리 산업은 누군가 한 명이 꽉 쥐고 흔들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독점 현상은 당신이 뻥튀기 된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하며 빅토리아 시크릿을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스크라 로렌스(Iskra Lawrence)

당찬 발언만큼이나 주목 받는 것은 바로 공격적인 마케팅이다. 자사 브랜드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기에 다소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는데, 자신들 스스로 라이벌로 꼽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델을 자사 모델로 기용했기 때문이다. 전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인 니나 아그달(Nina Agdal)이 올 여름 어도어미의 캡슐 스윔웨어 컬랙션 모델로 고객들을 찾을 예정이다.

어도어미가 자랑하는 또 다른 모델은 이스크라 로렌스(Iskra Lawrenceᆞ25), 속옷 업체 ‘에어리(Aerie)’의 전 모델이다. 88사이즈의 풍만한 몸매를 가진 그는 자신 같은 ‘플러스 사이즈’ 여성들이 세상에 당당해질 것을 요구한다.

많고 많은 통통하고 건강미를 갖춘 모델들 가운데 어도어미, 에어리 등이 로렌스를 홍보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그가 갖고 있는 ‘미’에 대한 철학이 소비자 심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개인 SNS에 백만 팔로워를 가진 로렌스는 뚱뚱한 자신의 몸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강조해 많은 여성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인물이다.
이스크라 로렌스가 개인 sns계정에 올린 허벅지 사진

얼마 전에도 그는 미국 SNS를 중심으로 퍼지는 ‘몸매자랑 인증샷’에 대해 틈이 벌어지는 자신의 허벅지와 벌어지지 않는 허벅지 양 사진을 올리며 “허벅지 틈이 벌어지건 벌어지지 않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당신을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 수는 없다. 건강하고 행복한 것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존중하라”며 소신 발언을 남겨 주목을 받기도 했다.

어도어미 측 관계자는 “우리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며 로렌스에 대한 믿음과 자사 모델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스크라 로렌스가 모델로 섰던 에어리는 아메리칸이글의 속옷 브랜드다. 자산 27억달러(32조86억원)의 자산가, 아메리칸이글 아웃피터스 회장인 제이 쇼텐슈타인(Jay Schottensteinㆍ60)이 “섹시하진 않지만 편안하고 저렴한 속옷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2005년 에어리를 출시했다. 
Aerie Real 캠페인

에어리가 미국의 여성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은 건 2014년 ‘진짜 몸매(Aerie Real)’ 캠페인을 시작하면서다. 마른 몸매여야 한다는 인식을 버리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몸매를 모델로 기용한 것이 성공 비결이었다.

에어리는 캠페인을 시작하고부터 화보와 광고사진 등에 일절 보정 처리를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전미섭식장애협회(NEDA)를 지원해 과도한 다이어트로 거식증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돕는다. 수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진짜 몸매’ 셀피(selfie, 셀카의 영어표현)를 찍어 SNS에 올리며 이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덕분에 2014년 연간 매출 9%, 작년 20% 성장한 것에 이어 올 1분기엔 무려 32%가 오르며 인기를 지속 중이다.

어도어미, 에어리 등이 “자신의 몸을 숨기지 마세요”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면, 아예 속옷 제작에서부터 IT 최첨단 기술을 가져와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꼭 맞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속옷을 파는 회사도 있다. ’써드 러브(Third Love)‘는 각종 스마트기기로 사진 두어 장만 찍으면 사용자에게 정확한 사이즈 정보를 알려주고, 거기에 걸 맞는 속옷을 제작해 배송해주는 회사다. 
써드 러브(Third Love) 모바일 앱 화면

이 제작 과정에는 몇 가지 보이지 않는 첨단 기술이 자리잡고 있다. 사용자가 보낸 2차원적 사진을 3차원 이미지로 만들어 몸과 가슴의 정확한 사이즈를 재는 것이다. 여기에 레이저를 통한 이미지 구현 기술이 사용되고, 꼭 맞는 사이즈 추천을 위해 빅데이터 분석까지 활용된다.

써드 러브만의 사이즈 측정 기술은 벌써 7개의 특허를 받았고, 4개의 기술은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혹시나 사진의 유출을 우려할 필요도 없다. 이 모든 과정들은 어떤 데이터베이스나 클라우드에도 저장되지 않고, 사용자의 휴대폰 그 자체에서 이뤄진다. 꼭 맞는 사이즈를 측정하면서도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민감한 신체를 맡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해 창업 2년만에 150억원이 넘는 투자금을 유치했다.

무더운 여름이 계속되는 요즘. 옷이 점점 짧아질수록 통통한 몸매 때문에 남모를 고민에 빠져있는 여성들이 있다. 하지만 무조건 마르고 날씬해야만 당당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도어미, 에어리, 써드 러브의 높은 인기가 증명하듯, 이번 여름엔 ’내 몸’을 조금 더 사랑해주는 것이 어떨까.

ser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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