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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간섭ㆍ분란 싫다” 상속대신 ‘재단경영’ 선택한 아르마니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윤현종 기자ㆍ김세리 학생기자]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아르마니’의 미래 계획이 윤곽을 드러냈다. 

아르마니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이자 현역 디자이너로 왕성히 활동해온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ᆞ82)가 퇴임을 앞두고 내린 결단은 바로 '재단 설립' 이다. 가족상속으로 행여 일어날 지 모르는 각종 분쟁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차원이다.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ᆞ82) ’아르마니‘ 창업자

아르마니는 최근 공식 성명을 통해 "아르마니의 미래를 책임질 재단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회사의 자치와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재단이 설립되면 최고경영자와 디자이너 등의 선임이 재단 내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회사의 모든 지분과 경영권도 재단 이름으로 이전된다. 즉, 최대 주주와 오너 자리를 사람이 아닌 ‘재단’이 상속받는 셈이다.

아르마니 그룹은 창업자가 직접 설계한 재단 운영 시안에서 특정 오너는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팔거나, 지배구조의 변화로 직원들이 피해를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원칙이 반영됐다. 또한 아르마니의 수익금 중 일정 금액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도 밝혔다.

이와 관련 재무 전문가는 “오너십 관계가 형성되면 직원들을 향한 윤리적·사회적 책임감이 따를 수밖에 없는데 재단 설립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창업자도 “충성과 열정을 다해 함께해 온 직원들이 오너 승계 문제로 불이익을 당할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아르마니 브랜드 로고

아르마니의 미래는 그간 베일에 감춰져 있었다. 40년간 창업자가 회사의 단독 주주로 군림해오면서도 후계자에 대한 언급은 좀처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조르지오 아르마니에겐 상속할 자식이 없어 후계자에 대한 의문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뿐만 아니라 80대의 노장임에도 여전히 디자인 컬렉션과 일상적인 업무에 참여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간 패션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40년 만에 경영권 승계에 대해 처음 입을 연 창업자는 “아르마니의 정통성을 지키고 회사 자금을 안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 재단 설립 취지라고 밝혔다. 실제로 과거에 그는 거대 뷰티패션기업인 케어링그룹과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으로부터 거액의 인수제안을 거절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재단을 세우는데 최소 30억달러(3조3240억원)가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61억달러(6조7600억원ㆍ포브스 기준)를 보유한 자산가로, 이탈리아 6번째 부자다.

자치와 독립성을 위한 것이라는 아르마니 창업자의 결단에는 또 한가지 이유가 숨어있다. 바로 가족 경영에서 오는 폐해를 막기 위함이다. 이탈리아의 패션 기업들은 유독 가업승계 과정에서 분란을 겪은 일이 많았는데, 아르마니 그룹은 이를 반면교사 삼아 불필요한 분쟁과 재정 낭비를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지아니 베르사체와 여동생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창업자인 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가 대표적인 사례다. 1997년 지아니가 총격으로 사망한 이후 예전의 인기를 되찾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투자됐기 때문이다. 창업자이자 디자이너였던 지아니 베르사체의 존재감은 곧 브랜드 그 자체였다. 그의 세련되고 도발적인 디자인과 명품계에 포진한 화려한 인맥, 그가 내건 ‘소비가 곧 미덕’이란 파격적인 슬로건은 곧바로 베르사체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지아니 사후 베르사체가 쌓은 명성은 급격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형 산토 베르사체(Santo Versace)와 여동생 도나텔라(Donatella Versace)가 각각 경영과 디자인을 맡으며 기사회생에 나섰지만 10년도 안돼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부턴 적자를 내기에 이르렀다. 오너 일가는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며 반전에 나섰지만, 의견충돌로 두 명의 CEO를 떠나 보내고, 2009년 지안 자코모 페라리스(Gian Giacomo Ferraris)를 CEO로 들이고 나서야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1995년 청부살인을 당한 마우리치오 전 ’구찌‘ CEO

또 다른 이탈리아 명품 ‘구찌’도 가족 간 불화로 타격을 받은 기업이다. 1953년 창업자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세상을 떠나자 알도(Aldo), 바스코(Vasco), 로돌프(Rodolfo) 세 아들이 경영권을 나눠가졌는데 3세들의 승계 과정에서 문제가 터진 것이다. 

로돌프의 아들 마우리치오(Maurizio)가 최고경영자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알도를 해고시켰다며, 로돌프의 아들이 경영권 소송을 내걸었다. 계속되는 분란에 1995년 마우리치오가 청부살인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구찌는 재정 악화로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아야 했다. 브랜드 가치가 급락한 것은 물론, 대표 가죽 제품으로 칭송받던 구찌 역사에도 지울 수 없는 오명을 남겼다.

아르마니의 재단 경영은 이같은 가족 경영에서 오는 내부적인 분란을 아예 키우지 않겠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초의 재단 소유기업은 아르마니가 처음은 아니다.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롤렉스’의 창업자 한스 윌스도르프(Hans Wilsdorf)는 1944년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재단을 설립했다. 당시 자신의 전 재산을 재단에 기부하며 앞으로 회사 이익금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고 밝혔다. 롤렉스 기업은 1960년대 한스 윌스도르프 사후부터 지금까지 재단 경영 체제를 유지하며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ser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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