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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제네시스 美상륙① ‘현대차 3.0’ 성공할까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천예선ㆍ민상식ㆍ윤현종 기자]현대차그룹의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가 국내 출범 8개월 만에 북미시장에 상륙했다. 지난 8일 현대차 북미법인은 중형 럭셔리 세단 G80에 대한 현지 기자 시승회를 시작으로 딜러망을 통한 본격 판매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정몽구(78) 현대차그룹 회장이 급성장하는 고급차 시장을 겨냥해 야심차게 내놓은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는 현대차그룹의 미래일 뿐 아니라 한국 자동차의 기술력과 문화를 끌어올릴 ‘마중물’로 여겨진다.

정몽구 회장은 올 초 시무식에서 “제네시스 브랜드를 세계 시장에 조기 안착시키고 브랜드 차별화를 위한 전사적 노력을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차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역설했다. 정 회장은 지난달 18일 열린 상반기 해외법인장 회의에서도 “제네시스 G80, G90의 성공적인 미국 론칭을 통해 글로벌 고급차 시장에서 브랜드 입지를 탄탄히 다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달 북미시장 진출로 글로벌 경쟁무대에 선 현대차의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 실무 사령탑을 맡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현대차 내부적으로 보면 제네시스는 ‘현대차 3.0’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의 1.0 시대는 현대가(家) 1세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정세영 전(前) 현대차 명예회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동차 보국’이란 사명으로 한국 자동차 산업 발전의 시발점을 끊은 시기다. 2.0 시대는 2세대 정몽구 회장이 기아차 합병과 아반떼ㆍ쏘나타를 쌍두마차로 글로벌 톱5로 도약한 시기다. 이제 정몽구-정의선 부자(父子)가 글로벌 고급차 시장에 출사표를 내면서 1967년 창립 이래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는 ‘현대차 3.0’ 성공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정의선, ‘제네시스’ 미국진출 진두지휘=올 초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사거리 현대모터스튜디오. 정의선 부회장이 20여명의 해외 주요 인사들과 함께 현대모터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정 부회장과 함께한 VIP들은 바로 미국 딜러 대표단. 정 부회장은 이들을 한국으로 극비 초청해 현대차 브랜드 체험공간인 ‘현대모터스튜디오’를 참관시켰다.

정의선 부회장은 이날 헤럴드경제와 단독으로 만나 “미국 딜러 대표인 딜러십 카운슬러들에게 ‘현대모터스튜디오’ 전시장을 보여주기 위해 함께 왔다”며 “올해 미국, 중동 등 들어갈 곳이 많다. 이제 시작이다”는 각오를 전했다. 그는 미국 진출과 관련해 심도 깊은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쇼룸이나 판매전략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이날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제네시스전략담당(전무) 등 현대차 제네시스 전담팀도 대동해 미국 딜러 대표단과 현대모터스튜디오 전층을 둘러봤다. 그는 딜러 대표단의 동선을 하나도 빠짐없이 함께 했다.

정 부회장이 제네시스 미국 진출을 위해 직접 움직인 것은 고급차 시장에 사활을 거는 현대차의 절박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기함 G90(국내명 EQ900)와 중형 G80을 연내에 미국으로 수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후 판매망과 딜러확보에 안간힘을 써왔다.

지난 2월 미국 딜러 대표단과 함께 현대모터스튜디오를 방문한 정의선 부회장(빨간색 원). [사진=천예선 기자]

현대모터스튜디오 2층 자동차 전문 도서관에 들어선 정 부회장과 미국 딜러 대표단은 상당시간을 머물며 현대차의 역사와 제네시스, 현대모터스튜디오에 관한 설명을 경청했다. 현대모터스튜디오가 현대차의 브랜드 방향성이 담긴 예술작품과 현대차만의 콘텐츠, 자동차 전문 도서관, 새로운 고객응대 서비스 등이 집약된 고객 소통공간인 만큼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해외 판매전략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제네시스 G80과 G90은 8월, 9월 각각 순차적으로 세계무대에 출격한다. 현대차 측은 기존 자사 딜러점 중 제네시스 브랜드 판매역량을 갖춘 딜러점을 선별해 판매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고급차 차별화 전략의 일환으로 고객이 원하면 굳이 딜러점 방문할 필요없이 찾아가는 판매ㆍ서비스를 전개 예정”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제네시스만을 위한 별도의 쇼룸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미국법인은 올해 G90 5000대 판매를 포함해 G80까지 총 3만대 판매한다는 목표다. G90는 북미에 이어 중동과 러시아에서도 8월, 9월 판매에 돌입한다.

▶EQ900 내수 성적표 ‘선방’=G90(국내명 EQ900)의 내수 성적표는 성공적으로 평가된다. 지난 12월 EQ900 출시 이후 올 상반기까지 누적 판매대수는 1만7986대로 집계됐다. 이는 에쿠스가 가장 잘 팔렸던 2009년 연간 판매기록(1만6274대)을 반 년 만에 넘어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차 측이 EQ900 국내 출시 당시 밝힌 판매목표인 1만4000대를 이미 달성했다.

제네시스 EQ900(해외명 G90)의 올해 국내 누적 판매대수는 1만8331대로 당초 연간 목표인 1만4000대를 이미 돌파했다. [자료=현대차] 


하지만 제네시스 브랜드가 ‘자동차 왕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조기 안착할지는 미지수다. 북미시장이 전세계 고급차 업체들의 각축장인만큼 경쟁은 세계 어느 곳보다 치열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국 현지에서 제네시스 인지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것. 지난해 미국에서 제네시스는 3.1만대(국내 3.8만대)를 판매했다. 에쿠스는 2332대(국내 5158대) 팔렸다. 특히 대형 럭셔리 세단 2세대 제네시스(DH) 판매는 전년대비 30.2% 증가하며 미국 동급 차종 중 판매량 3위(벤츠 E클래스 1위ㆍBMW 5시리즈 2위)를 기록했다. 또 지난 미국 프로 풋볼리그(NFL) 결승전인 ‘슈퍼볼’에서 선보인 G80(2세대 제네시스) 광고가 브랜드 광고로는 처음으로 1위에 오른 것도 인지도 향상에 큰 역할을 했다.
 
▶제네시스, 새로운 시대 서막(?)=제네시스 브랜드는 현대차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서막으로 보는 관측도 많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제네시스 개발 과정을 진두지휘했지만, 실무 사령탑은 그룹 후계자로 이견이 없는 정의선 부회장이 도맡았다. 지난 1월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제네시스 공식 출범을 대내외에 선포한 것도, 해외시장 전략을 총괄한 것도 정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이 현대차의 고급브랜드화를 주도한 것은 10여년 전부터다. 2006년에는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디자인 책임자를 지낸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를 기아차 최고 디자인 책임자로 기용해 기아차의 브랜드 정체성과 디자인을 재정립하는 작업을 성공시켰다. 또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하비 개발을 이끌면서 현대ㆍ기아차의 라인업을 확대했다.

이후에도 정 부회장은 글로벌 고급차 브랜드 베테랑들을 잇달아 영입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2014년 말에는 직접 BMW 고성능 브랜드인 M시리즈 개발을 주도한 알버트 비어만을 영입했고, 지난해에는 루크 동커볼케(람보르기니ㆍ벤틀리 디자인)와 맨 프레드 피츠제럴드(람보르기니 브랜드 총괄)를 제네시스 전담팀에 가담시켰다. 시장 전문가들은 현대차의 제네시스 전략에 대해 “현대차가 도요타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를 벤치마킹하면서도 성장 궤적을 3배 빠른 속도로 추격할 계획”으로 보고 있다. 
 


▶정중동 ‘정의선’=정 부회장은 할아버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도전정신과 아버지 정몽구 회장의 추진력을 동시에 물려받은 인물로 평가된다. 현대가 특유의 가부장적 가풍을 이어받아 아버지 앞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꺼리지만, 소박하고 겸손하면서도 진중하고 동시에 창의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재계에서는 “현재 재계 3~4세 가운데 가장 경영능력과 리더십, 책임감 등을 조화롭게 갖춘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 부회장은 1994년 현대모비스의 전신인 현대정공에 과장으로 입사해 그룹 일에 처음 발을 들였다. 그러나 입사 1년 만에 미국 유학길에 떠났고 학위 취득 후 일본의 이토추상사의 뉴욕지사에서 2년 동안 근무한 뒤 다시 귀국했다.

그룹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99년 현대자동차 구매실장 및 영업지원사업부장으로 복귀하면서다. 이후 국내영업본부 영업담당 겸 기획총괄본부 상무, 국내영업본부 부본부장 전무,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 겸 기아차 기획실장 부사장 등을 거쳤고,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2009년부터는 현대자동차 기획과 영업담당 부회장직을 맡아오고 있다.

▶정의선 후계 마무리, 제네시스 성공이 ‘지렛대’=제네시스 성공여부는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후계 마무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가 고급차 시장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정 부회장의 경영능력도 인정받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23.29%), 현대차(2.28%), 기아차(1.74%), 이노션(2%), 현대위아(1.95%) 등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룹 지분구조의 핵심인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 부회장이 현재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현금화하거나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을 추진하는 시나리오가 유력시 된다.

슈퍼리치 ‘한국 100대 부호’ 정의선 자산현황 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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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 부회장의 상장사 자산 평가액은 올 상반기 크게 줄었다. 정 부회장이 쥔 현대글로비스(지분 23.9%) 등 5개 계열사 주식가치가 6개월간 2229억원 증발한 탓이다. 정 부회장의 상장사 주식 평가액은 지난 1월 4일 현재 2조8115억원이었지만, 7월 1일 2조5886억원으로 내려앉았다. 하락세는 계속돼 지난 19일 현재 자산은 2조5147억원으로 집계됐다. 제네시스의 불확실성과 내수 수요 절벽, 신흥시장 부진 등 경영여건 악화가 주가를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해외시장 안착이 정의선 부회장의 후계작업에도 지렛대가 될 것”이라며 “2020년까지 총 6개로 구성된 럭셔리 라인업이 꾸준히 고급차 시장에서 인정받느냐 여부가 제네시스의 명운을 가를 것”이라고 전했다.

/cheon@heraldcorp.com
그래픽. 이해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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