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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유엔도 “모든 피해자에 사과ㆍ보상”촉구…옥시 ‘진짜 주인’ 대체 누구길래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윤현종 기자ㆍ이채윤 학생기자] 보다 못한 유엔(UN)이 나섰습니다. 국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 최대 가해 기업인 옥시(영국 레킷벤키저)에 공식적으로 사실상의 ‘경고장’을 날린 것이죠.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망자 146명(정부 확인)중 103명에 직접적 책임이 있었으나 5년 간 ‘침묵’으로 일관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바스쿠트 툰작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유해물질 특별 보고관은 가습기살균제 사태 등의 파악을 위해 지난해 방한한 결과를 13일(현지시각) 열린 제33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공유했습니다.
 
지난 4월 광화문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가 가습기살균제 제조 기업들의 처벌을 촉구하며옥시 상품 불매를 선언했다. [출처=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

그는 지난달 3일 미리 작성한 특별보고서에서 “레킷벤키저는 모든 피해자(All victims)들이 사과 및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아울러 작년 한국 현지를 조사한 별도의 결과 보고서에선 “소비자 제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사한 비극 방지를 위해 정부가 취한 조치는 충분하지 못했다. 우려스럽다”며 정부의 미흡한 조치도 비판했습니다.

세계 최대 국제기구까지 소매를 걷어부칠 정도로 이 건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하지만 발단이 된 회사 ‘옥시’는 베일에 싸인 기업집단입니다. 이 회사의 실질적 소유주는 대체 누구일까요.

▶‘귀 닫고 입 막은’ 옥시=먼저 사태의 경과를 간단히 보실까요. 유엔까지 나선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옥시의 ‘답 없는’ 조치 때문입니다. 옥시는 지난 5년간 피해자들과 시민단체가 진상조사와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했지만 계속 무시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5월 뒤늦게 사과 성명을 발표했죠. 국내 검찰 수사와 사회적 불매 운동이 전개된 뒤였습니다. 옥시는 피해자들에게 최대 3억 5000만원을 지급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피해 정도가 심각한 1,2단계 피해자에만 배상을 한정 지은 데다,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와는 무관한 ‘한국 지사’에서 일어난 일로 책임을 외면하려 했습니다.

옥시는 이후 조사에서도 불성실로 일관했습니다. 거라브 제인(47) 전 한국지사 대표를 비롯한 본사관계자들은 검찰 소환 요구에 불응했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는 옥시레킷벤키저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대표

고작 이메일을 통해 보낸 서면 조사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때도 ‘한국어를 못 한다’ㆍ‘기억이 안 난다’ㆍ‘관여한 바 없다’ 식의 무책임한 답변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달 열린 국회 가습기 살균제 피해 청문회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옥시 측 증인 28명 가운데 13명이 불참했죠. 그나마 참석한 아타 사프달 옥시 대표는 “독성 물질 사용을 결정한 것은 영국 본사인 레킷벤키저가 옥시를 인수하기 이전에 일어난 일”이라며 본사와의 연관성을 부인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 기업을 이끌길래= 옥시의 조치는 유례없던, 새로운 류의 기업 ‘갑질’로 평가받습니다. 소비자를 ‘호갱’으로 취급한다는 비판 역시 끊이지 않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 기업의 실질적 오너일까. 레킷벤키저가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해서 오너 역시 영국인일 것이라 판단하면 오산입니다. ‘은밀한 가족’으로 알려진 독일 재벌 가문 ‘라이만(Reimann) 가(家)’이기 때문이죠.

라이만 가는 생활 소비재 분야의 세계 최강자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브랜드들의 실제 주인인데요. 라이만 가는 패션ㆍ화장품브랜드로는 ‘캘빈클라인’ 향수ㆍ‘지미추’구두ㆍ‘코티’를 갖고 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최대 가해자로 지목되는 RB코리아의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그룹 제품들

식품업계도 장악했습니다. 오레오 쿠키로 유명한 ‘몬델레즈’ㆍ커피업체인 ‘피츠 커피앤티’ㆍ도너츠업체 ‘크리스피 크림’ 등입니다.

세계적인 콘돔 브랜드로 알려진 ‘듀렉스’도 라이만 가 소유입니다. 라이만 가는 룩셈부르크 소재 거대 투자사 JAB홀딩스(Joh. A. Benckiser Holdings)의 지분 95%이상을 소유하며 이들 기업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습니다.

▶은밀한 라이만 가의 실체=라이만 가문은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부자 집안으로 꼽힙니다. 가족 일원들은 각종 시장조사기관의 부호 순위에는 등장하지만, 사업 일선에서 활약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얼굴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구성이나 비즈니스 철학 역시 독특합니다. 대대로 회사를 소유ㆍ경영하는 일반적인 재벌가문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JAB홀딩스 전문경영인 3인. (왼쪽부터) 페터 하프, 올리비어 고뎃, 바트 베흐트

대대로 이어온 규칙과 연관이 있는데요. 라이만 가는 자손들에 회사 주식을 물려받는 대신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18세가 되면 ‘공적인 일에 가능한 한 관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합니다. 현재 JAB홀딩스는 페터 하프ㆍ바트 베흐트(Bart Becht)ㆍ올리비어 고뎃(Olivier Goudet) 등 전문경영인 3명이 맡고 있습니다.

재산도 어마어마합니다. 라이만 가의 자산합계는 186억달러(20조 7500억원)로 추산됩니다. 가족 구성원 중 볼프강 라이만(63)ㆍ마티아스 라이만(51)ㆍ슈테판 라이만(53)ㆍ레나테 라이만(64)ㆍ안드레아 라이만(59) 등 5명이 세계 부호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JAB홀딩스 로고. 라이만 가문 5명의 사진은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없다.

가문에서 ‘가장 덜 부유한’ 인물이자 미국시민권자인 여성 안드레아를 제외한 4명의 개인 자산은 각각 44억달러(4조 9000억원ㆍ포브스 억만장자 지수 기준)로 평가됩니다. 안드레아는 2003년 JAB홀딩스의 지분을 매각하고 현재 10억달러(1조1100억원) 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들 5명 모두 입양아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양아버지였던 가문의 두 번째 승계자 알버트 라이만(Albert Reimann)이 데려왔습니다.

나머지 4명은 갖고 있던 회사 주식을 5명에게 넘기면서 JAB홀딩스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왔습니다.

다만, 혈육도 아닌 입양아 형제들끼리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는 와중에도 분란이 없다는 점은 독특합니다. 게다가 물려받은 재산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는 형제도 없습니다. 한 부모 밑에서 나고도 재산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것이 일반적인 동아시아권의 많은 재벌들에 익숙한 우리 관점에서 보면 특이한 경우입니다.

올바르지 못한 옥시의 후속조치로 유엔의 경고까지 나온 현재, 이 ‘비밀 가문’의 실체는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y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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