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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59만 VS 2971”…부자도 부자 못 만들 나라, 한국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윤현종ㆍ민상식 기자]최근 미국 한 경제매체가 흥미로운 분석을 시도했습니다. 세계 주요 억만장자들이 개인 자산 등 ‘곳간’을 자국에 활짝 연다고 가정할 때, 얼마나 많은 스타트업이 비용 지원을 받을 지 시뮬레이션 했습니다. 민간 영역의 기업가 육성능력을 측정한 것입니다.

단순히 말해 한 나라 최대 부자가 또 다른 ‘부자 후보’인 기업가 몇 명을 만드는 지 본 셈이죠. 갑부들의 천문학적 자산은 상징적인 마중물로 삼았습니다.

이 매체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1%를 쥔 억만장자 40여명이 그들의 돈을 쓴다면 각국 정부나 기관이 못하는 일도 해낼 수 있다”고 평합니다.

슈퍼리치 팀은 이 데이터를 더 톺아봤습니다. 갑부들이 지원 가능한 스타트업 수는 국가별로 천차만별이었습니다. 혜택 받는 창업자가 많은 나라일 수록 창업환경도 대체로 양호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의 경우 최대 부자 개인자산으로 지원 가능한 창업기업은 2970여개로 나타났습니다. 중국(59만여개)의 200분의 1, 미국(13만여개)의 50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전체적인 창업환경도 이들 나라보다 열악했습니다.

▶창업비 저렴한 中, 갑부 지원효과 ‘세계 1위’, 韓 ‘꼴찌서 2등’=시뮬레이션 결과부터 볼까요. 조사 대상 42개국 자산 1위 억만장자들의 개인자산 합계는 846조2700억원(7556억달러)입니다. 이를 각국 스타트업의 ‘시작비용(임대료 등 기타 항목 제외)’으로 쓸 경우 289만4840개 기업을 도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창업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인물은 중국의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이었습니다. 그의 자산 36조7000억원으로 시작비용 혜택을 받는 창업기업 수는 59만 6303개로 집계됐습니다. 42개 나라 갑부들 중 ‘지원능력’이 가장 풍부한 셈입니다.

여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관련 비용이 그만큼 저렴해섭니다. 세계은행이 2004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독립 보고서 ‘두잉 비즈니스(Doing Business)’는 사업 시작(Starting a business)에 드는 돈을 해당 연도 1인당 국민총소득(GNI) 대비 비율로 추산하는데요. 중국은 이 비율이 0.7%입니다. 현재 1인당 GNI 827만원(7380달러)의 1%도 안 되는 6만원 정도로 사업 첫 발을 뗄 수 있는 셈입니다.


중국보다 시작비용이 더 싼 나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입니다. 우리 돈 2만원 수준입니다. 이 나라 최대 부호가 도울 수 있는 창업기업은 38만 5527개입니다.

세계 최대 부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창업자가 버틴 미국은 어떨까요. 스타트업 13만 7196개가 게이츠의 도움으로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같은 기준을 놓고 볼 때 한국의 위치는 조사대상 42개국 중 41위입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자산 13조2000억원을 모두 쓴다 해도 혜택 볼 회사 수는 2971개입니다. 유럽의 키프로스(3279개 지원 가능)보다 적습니다.

슈퍼리치 ‘한국 100대 부호’ 이건희 자산 자세히 보기 (PC 버전)
슈퍼리치 ‘한국 100대 부호’ 이건희 자산 자세히 보기 (모바일 버전)

두잉 비즈니스에 따르면 한국서 스타트업 1개가 사업을 시작하려면 445만원(GNI 14.5%)이 듭니다. 중국의 74배, 남아공의 222배입니다. 67만원이 있어야 하는 미국 보다도 6배 이상 많습니다.

결국, 단순히 돈 많은 갑부라고 해서 더 많은 창업기업을 도울 순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가별 사업환경이 ‘변수’였습니다.

▶ “창업 정착도, 확장도 어려워”=한국이 ‘갑부가 나선다 해도 기업가 양산이 어려운 나라’란 사실은 설문 결과로도 드러납니다.

1999년 시작해 세계 최대 규모 기업가 정신 연구 프로젝트가 된 GEM(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에 따르면 회사를 세워 3년 반 이상 직원에게 급여를 주고 있는 한국인은 성인 10명 당 1명이 채 안 됩니다(9.2%ㆍ2015년). 조사대상 60개국 중 37위입니다. 


중국은 어떨까요. 초기단계 창업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비율(TEA)은 지난해 12.8%였습니다. 2013년 이후 3년 연속 두자릿 수 비율을 기록 중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업 시작비용이 우리 돈 2만원 수준에 불과한 남아공의 경우 2013년 TEA가 10.6%에서 1년 뒤 7%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작년엔 9.2%를 기록해 다시 증가 중입니다.

사업 시작부터 쉽지 않고 유지도 힘든데, 직원을 늘리는 등 회사 몸집을 키우는 건 언감생심입니다. 실제 창업 초기단계인 한국인 가운데 “5년 내 일자리 6개 이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응답자는 15.6%였습니다. “(일자리) 1∼5개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고 답한 비율 46.5%에 비하면 3분의 1이 채 안 됩니다. 그만큼 장애물이 많다는 방증이죠.


반면 중국 창업자들의 경우, 중ㆍ장기 사업 확장에 대한 기대치가 35%로 한국의 갑절 이상입니다. 미국도 30%이상입니다.

남아공도 초기 창업자 25.7%가 “5년 내 일자리 6개 이상 창출”을 내다본다고 답했습니다. 한국보단 많네요.

▶ “창업, 경력에 도움? 사회적 지위?”=이처럼 여타 국가에 비해 사업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창업’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인식 또한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GEM 설문에 따르면 중국은 창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가장 긍정적인 곳 중 하나였습니다. “창업은 개인 경력 쌓기에 도움 되는 선택”이라고 응답한 중국인은 65.9%로 나타났습니다. 10명 중 7명 가까운 수준입니다. 미국도 성인 64.7%가 창업이 자신의 커리어를 풍부하게 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남아공은 이 비율이 73.8%에 달했습니다.

한국은 38%만이 “창업 결정 → 경력쌓기 도움”이라고 답했습니다.

자연스레 창업은 사람들의 ‘상승 욕구’또한 크게 자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업에 성공하면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얻게 될 것”이라고 응답한 한국인은 10명 중 5명 정도에 그쳤습니다. 

반대로 중국ㆍ미국ㆍ남아공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평균 76.8%의 응답자들이 창업을 통해 소위 ‘신분상승’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이 세 나라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습니다. 세계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제일 심한 축에 속한단 점입니다. 우선 2009년 유엔이 낸 ‘인간개발보고서’의 최상위 10%와 최하위 10% 소득격차를 볼까요. 미국은 15.9배ㆍ중국은 13.2배ㆍ남아공은 35.1배입니다.

소득 불평등을 측정하는 또 다른 지표인 지니계수의 최근값을 적용해도 비슷합니다. 1에 가까울 수록 불평등 정도가 심하죠. 알리안츠가 낸 ‘2015 부(Wealth) 보고서’ 등에 따르면 2014년 미국의 지니계수는 0.8056ㆍ중국은 0.5223ㆍ남아공은 0.65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보셨다시피 이들 나라의 창업 생태계는 상당히 역동적이란 게 숫자로도 파악됐습니다. 불평등을 딛고 ‘내 사업’을 일으킬 환경이 어느정도 갖춰졌단 뜻입니다. 시뮬레이션 결과긴 하지만, 갑부들이 창업비용을 대 준다면 더 많은 스타트업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알리안츠 ‘2015 부(Wealth)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지니계수는 0.5347이다. 0.4가 넘으면 소득불평등이 심화한 것으로 판단한다. 1에 가까울 수록 불평등 정도는 더 심해진 것으로 본다. 사진은 서울 강북의 한 밀집주거지역. 멀리 강남 일대가 보인다. 강남은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이 몰려사는 지역이다. [출처=게티이미지]

한국은 반대로 창업 환경이 녹록찮습니다. ‘불평등’도 세 나라 못잖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국내 상위10%의 소득규모는 하위10%의 10.1배입니다. 지니계수는 0.5347(2014년)로 나타났습니다.
factism@heraldcorp.com
그래픽. 이해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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