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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내일은 슈퍼리치(37) ‘아리랑’ 지키려 창업한 29세 청년, 꿈을 현실로 만든 사연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윤현종 기자ㆍ이채윤 학생기자]소년은 그저 우리 ‘아리랑’이 좋았다. 그 작은 울림이 삶을 바꿔놓았다. 아리랑을 중국에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를 접한 그는 세계 각지를 돌며 이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머릿 속 생각과 달리 세상의 장애물은 많았고, 높았다. 우여곡절 끝에 문현우(29) 씨는 ‘아리랑 스쿨’을 만들었다. 한국 문화 알리기에 일생을 바치기로 마음먹은 결과물이다. ‘학교’는 꾸준히 커 나가고 있다. 수강생 260여명을 둔 문 대표를 슈퍼리치 팀이 만나봤다.

아리랑 스쿨 문현우 대표.[아리랑 스쿨 제공]

그의 유년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1997년, 그는 조기유학 열풍에 떠밀려 말레이시아 국제학교로 보내졌다. 고작 10살이었다. 향수병에 시달렸다. 그리고 어느 날 현지에 온 한국 대표팀의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러 간 소년은 귓가에 들려온 ‘아리랑’에 가슴이 뛰었다.

열 살에 타국으로 건너가 3년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에게 가장 먼저 들린 것은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부모님의 이혼소식이었다. 그렇게 어머니와 고시원 단칸방 생활을 시작했다. 작은 소음에도 갈등을 빚던 고시원이 싫었던 소년은 곧바로 ‘붉은 악마’에 가입했다. 그렇게 2002년 월드컵을 또다시 ‘아리랑’과 보내게 된다.

관광학과를 다니며 스튜어드를 꿈꾸던 그는 중국이 아리랑을 그들의 문화로 편입하려 한다는 ‘동북공정’뉴스를 접했다. 유년시절의 아픔을 어루만져준 아리랑을 지켜야겠다는 생각, 그 뿐이었다. 작은 결심이 ‘아리랑 유랑단’을 만들었다. 문 대표는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 같았다”며 “유년 시절의 기억이 기억 저장소에 있다가 불현 듯 종을 울리듯 나를 일깨웠다”고 회고했다. 

아리랑 유랑단.[아리랑 스쿨 제공]

하지만 유랑단을 만든 과정은 사실상 ‘맨 땅의 헤딩’이었다. 문 대표는 동료가 돼 줄 만한 이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다짜고짜 수십여개 국악단에 전화를 걸었다. 하나같이 자초지종을 들어보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귀를 기울여준 곳이 있었다. 바로 서울대 국악단이다.

서울대 국악단은 국악전공자 2명을 소개해줬다. 나머지 인원은 포털 검색을 통해, 대외활동으로 알게 된 지인들이 채웠다. 그렇게 문 대표를 포함한 여섯 명의 ‘어벤져스(?)’가 탄생했다. 

아리랑 유랑단의 해외공연 모습. 장구ㆍ대금ㆍ가야금ㆍ판소리 등의 국악전공자와 한국무용 전공자들을 모아 총 15개국 29개 도시를 순회했다. [아리랑 스쿨 제공]

자금 역시 직접 마련했다. 문 대표의 꿈을 ‘카페베네’가 알아줬다. 그는 1억원에 달하는 후원을 받아냈다. 그렇게 아리랑 유랑단은 2013년 3월 1일부터 6월 25일까지 총 117일간 15개국 29개 도시에서 공연을 펼쳤다.

아리랑 ‘고개’를 넘는 것만큼이나 문화가 다른 세계의 ‘고개’를 넘는 것은 힘들었다. “페루에선 기니피그를 구워 먹고, 인도에선 손으로 카레를 먹는 것에서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한다.

힘든 만큼 보람도 컸다. 아리랑 유랑단의 공연을 보고 고국 생각에 눈물을 흘리던 재외동포들의 모습이 가슴 속 깊이 박혔다. 문 대표는 멈추지 않기로 했다. 3개월의 여정을 마치고 어른이 되어 돌아온 그가 ‘아리랑 스쿨’을 꿈꾸게 된 이유다. 

아리랑 스쿨 내부 모습. 이채윤 학생기자/yoon@heraldcorp.com

하지만, 세계를 돌며 공연을 한 것과 국내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어김없이 자금 문제에 부딪혔다. 그는 꿈과 간절함을 담아 도전한 ‘2014 한국관광공사 창조관광사업 공모전’에서 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한다. 그렇게 5000만원의 창업 지원금으로 상상 속의 ‘아리랑 스쿨’을 실현해냈다.

아리랑 스쿨 강의실. 이채윤 학생기자/yoon@heraldcorp.com

현재 아리랑 스쿨 수강생은 무려 262명에 달한다. 가야금ㆍ해금ㆍ한국무용ㆍ한국화ㆍ서예그라피 등 커리큘럼도 다양하다. 월 10만원 수강료와 월 10회 정도 외부 강연까지 더해 월수입이 2000만원을 웃돈다. 현재 수업을 하는 강사만 20명, 소속 프리랜서 강사는 80명 정도다.

의사부터 회사원ㆍ학생까지 수강생도 다양하다. 98%이상이 여성이다. ‘나만의 고상한 취미를 만들자’는 마케팅 포인트가 잘 들어맞았다. 문 대표는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의외로 답을 못하는 20ㆍ30대가 많다”며 “이들의 취미를 찾아주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재등록률은 50% 이상이라고 한다. 

외국인과 'FREE절'을 하는 문 대표 모습. FREE허그에서 착안한 기획으로 우리 ‘절’을 통해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자 했다[아리랑스쿨 제공]

문 대표는 ‘아리랑 스쿨’에 주력하고 있지만, 문화 기획 활동에도 꾸준히 힘을 쏟고 있다. 전통놀이를 알리고자 시작했던 ‘전국 대학생 윷놀이 챔피언십’은 벌써 3회까지 진행됐다. 좋은 취지의 행사로 여긴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이틀 간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을 빌리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서울 월드컵경기장 하루 대여비는 2500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이 뿐 아니다. 지난해엔 ‘청년조선통신사’를 기획했다. 조선통신사 2015년 버전이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조달받았다. 청년들은 2주간 실제 조선통신사가 걸었던 길을 지나 일본까지 다녀왔다.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들려주고 싶었던 문 대표는 얼마 전 책도 발간했다. ‘아리랑 청년, 세계를 달리다’라는 제목의 책은 3쇄까지 발행된, 나름대로 ‘성공한’ 책이다.

우유니 소금 사막 한복판에 누운 문 대표의 모습. [아리랑스쿨 제공]

문 대표는 그의 사업을 ‘확장성’과 ‘지속가능성’으로 설명했다. 거창한 사업계획은 절대 세우지 않는다. 그의 목표는 현재 두 칸인 강의실을 세 칸, 네 칸으로 늘리는 것이다. 문 대표는 “천천히 서울 전역으로, 부산ㆍ대구 등 지방으로 확장하고 싶다”고 전했다. 지속가능한 사업을 서서히 확장하는 것, 그만의 사업 방식이다.

아리랑 청년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문 대표의 머릿속에는 앞으로의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틀이 잡혀있다. 심지어 사업 이름까지 정했다. 그는 ‘문화 기획’을 꿈꾸는 청년들이 해외에서 그 꿈을 펼치는 것을 돕기 위해 ‘아리랑 유랑단 챌린저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취미인’이라는 이름의 플랫폼 개발도 구상 중이다. 그는 “아리랑 스쿨로 시작했지만, 서양학을 전공하고 그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청년들을 위해 ‘베토벤 스쿨’이라는 이름의 서양판 아리랑 스쿨을 만들고 싶다”고도 전했다.

y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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