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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염소 가죽 위에 그린 1100억짜리 지도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민상식 기자ㆍ이채윤 학생기자] 지난 10월 초 어느 날 미국 뉴욕 맨해튼 동쪽에 위치한 한 사무실 바닥에 알록달록한 지도 한 장이 펼쳐져 있었다. 오는 2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릴 유럽순수예술재단(TEFAF) 박람회에 사상 최대 경매가로 나올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지도’였다. 

1531년 비스콘테 매그길로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세계 지도 [출처=다니엘 크라우치 레어 북스]

겉보기엔 ‘색’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가 채색한 현대판 지도 같지만 놀랍게도 이 지도의 나이는 무려 485세다.

희귀한 서적이나 지도ㆍ악기 등을 경매하는 인터넷 사이트 ‘다니엘 크라우치 레어 북스(Daniel Crouch Rare Books)’는 이 지도의 경매 시작가를 1억달러로 책정했다. 우리 돈 1138억원 정도다. 다니엘 크라우치 레어 북스의 대표인 다니엘 크라우치는 “이런 종류의 세계지도는 많이 접했지만, 이렇게 빛이 나는 지도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미국 동부 해안과 항구들을 묘사한 모습이 오늘날 지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밀하고 세밀하다. [출처=다니엘 크라우치 레어 북스]

폭 204㎝ㆍ높이 91㎝의 이 지도는 담고 있는 의미도 남다르다. 미국 동부 해안과 뉴욕 항구를 자세히 그려낸 현존하는 첫 지도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해상 실크로드의 개척자라 불리는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의 항해길을 그린 가장 오래된 지도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이 지도를 누가 그렸을까. 바로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선원이자 지도제작자인 비스콘테 매그길로(Vesconte Maggiolo)이다. 그는 이 지도를 1531년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는 포르톨라노 평면구형도식으로 그려졌다. 나침반 중심에서 뻗어나가는 직선을 그려 넣어 정확도를 높인 것이 특징이다. [출처=다니엘 크라우치 레어 북스]

16세기에 그렸다고 하기엔 방식이 정교하다. 포르톨라노 평면구형도(Portolan planisphere)식이다. 나침반 중심에서 방사상으로 뻗어나가는 직선을 그려 넣어 지구의 두 반구를 묘사한 것이다. 항만이나 해안선은 경험적으로 추정된 상대적 위치를 표시한 것이지만, 그 모양과 위치는 오늘날의 해도에 뒤지지 않을 만큼 상세하다. 
 
지도를 펼쳤을 때 위쪽과 아래쪽, 양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출처=다니엘 크라우치 레어 북스]

화려한 색감은 보는 이들의 이목을 끈다. 빨강ㆍ파랑ㆍ초록ㆍ노랑 등의 단색을 단순히 칠한 것이 아니다. 다채로운 색상조합으로 명암까지 표현했다. 그렇다면 5세기가 흐르는 동안 글씨와 색들이 잘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염소 가죽’(Goat Skin)에 있다. 

염소 가죽은 얇지만 섬유가 치밀하다. 매그길로는 탄력성이 우수해 형태가 망가지지 않는 염소 가죽의 장점을 십분 이용했다. 지도를 펼쳤을 때 위쪽과 아래쪽 모두에서 볼 수 있도록 제작된 것도 특징이다.
 
아프리카 대륙을 가득 채운 네 명의 왕. 솔로몬과 프레스터 존, 그리고 익명의 왕 두명을 그렸다. [출처=다니엘 크라우치 레어 북스]

세부사항도 놓치지 않았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동물인 코끼리나 말 등을 그려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상상의 동물인 유니콘과 용도 등장한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을 장식한 네 명의 왕은 당시 서방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왕국의 제 3대 왕이자 ‘지혜의 왕’으로 알려진 ‘솔로몬(Solomon)’과 에티오피아에 왕국을 건설했다는 열렬한 기독교인 ‘프레스터 존(Prester John)’도 그려져 있다.

나머지에는 왕국을 나타내는 화려한 게르만 있을 뿐 앞을 지키는 왕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서양인들로 하여금 가보지 못한 대륙에 대한 궁금증에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지도에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모습도 있다.[출처=다니엘 크라우치 레어 북스]

이 지도가 오는 22일 열리는 TEFAF 박람회에서 1억달러에 낙찰되면 공식적으로 경매 최고가를 경신하게 된다. 현재 사적으로 거래된 지도 가운데에선 2003년 낙찰된 ‘월드시뮬러 지도(Waldseemüller map)’가 1억달러를 기록한 바 있다.

크라우치는 “몇 세기에 걸친 예술의 역사를 두고 봤을 때, 결고 비싼 가격이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 지도를 마음에 두고 있는 이들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채색본.[출처=K옥션]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최고의 지리학자 김정호가 1861년 제작한 ‘대동여지도’ 채색본이 지난 6월 경매에 나왔다. 경매 추정가는 25억원.

어떤 근거로 이 같은 추정액이 나왔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지도의 편의와 실용성ㆍ판화의 예술미까지 갖춘 이 작품이 그 정도 가치는 있다는 것이 당시 K옥션 관계자들의 중론이었다.

출품됐던 대동여지도는 세로 약 6.7mㆍ가로 약 3.8m로 접었다 펼칠 수 있는 22첩 완질본이다. 세우면 건물 3층 높이에 달한다. 산맥ㆍ수맥 뿐 아니라 각 군의 위치와 크기ㆍ도로교통 정보 등이 정확히 표기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군현마다 5가지 색으로 각기 다르게 채색해 행정구역의 범위와 경계가 한눈에 들어온다.

약 20여개 기관에서 소장중이며 현재 3점의 대동여지도가 보물로 지정돼있다. 출품된 대동여지도는 현존하는 3점의 대동여지도 목판 채색본과 같은 것이라는 ‘희귀본’이라는 평가로 경매 전부터 관심을 받았다.

당시 유찰됐던 이 대동여지도 채색본은 지난달 익명의 국내 소장가에게 추정가에 못미치는 수준으로 낙찰된 것으로 알려졌다.

y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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