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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재벌, 대통령, 성공적’(?)…트럼프도 시험대 올랐다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민상식ㆍ이세진 기자] 상속자, 기업가, 방송인, 그리고 최고통수권자. 8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제4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70)가 평생 모아 온 ‘직함’들입니다. 부자가 정치를 하는 일, 드문 일도 아닙니다. 트럼프가 특이한 것은 기업가에서 최고통수권자까지 단 한 번의 정치경력도 없이 커다란 점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트럼프에게는 ‘미국 최초 아웃사이더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도 붙었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제45대 대통령 당선자 (게티이미지)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돈으로 부동산 재벌가문의 명맥을 이어간 트럼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집계한 그의 자산은 37억달러(4조3000억원)에 달합니다. ‘억만장자 출신 국가 최고통수권자’라는 타이틀은 트럼프에게 최초로 붙은 것은 아닙니다. 세계에는 트럼프와 비슷한 인물을 ‘겪은’ 여러 나라가 있습니다. 이들의 행보로 트럼프와 미국의 미래를 엿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막말은 내가 원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트럼프의 거침없는 발언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때, 세계인들은 어디선가 비슷한 사람을 본 것만 같은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0) 전 이탈리아 총리입니다. ‘부동산ㆍ미디어ㆍ막말’ 세 가지가 트럼프와 베를루스코니를 관통하는 키워드입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전 총리 (게티이미지)

포브스가 집계한 그의 자산은 2016년 11월 기준 59억달러(6조8000억원)입니다. 막대한 자산의 출발은 부동산이었습니다. 1960년대 말 아파트 건설 수익금으로 종자돈을 모은 그는 미디어 산업에 진출했습니다. 이탈리아 최대 방송ㆍ엔터테인먼트 업체인 메디아셋, 신문ㆍ출판업체 몬다도리, 금융업체 메디올라눔을 소유하면서 자국 내에서의 영향력을 높였죠. 1986년에는 세계적인 축구팀 AC밀란을 인수해 구단주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원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한 그는 1994년 총리가 됐습니다.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의 3선 총리가 되었지만 9년 가까이 스캔들로 점철된 임기를 지냈습니다. 탈세, 미성년자 성매매, 여자친구의 장관 임명, 미디어 장악…. 이런 혐의를 가지고도 총리를 세 번이나 할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막말은 트럼프와 완전히 닮은꼴입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젊고 잘생기고 심지어 선탠까지 제대로 한 지도자”라고 그의 피부색을 비꼬아 말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또 뉴욕 월스트리트 가의 투자자들에게 이탈리아 투자를 호소하면서 “우리 이탈리아엔 늘씬한 여비서들이 많다”고 자랑하기까지 했습니다. 또 “이탈리아엔 미녀들이 많아서 성폭행 사건을 원천봉쇄할 수 없다”라고도요.

2011년 총리직에서 물러나고도 그는 여전히 이탈리아 자유인민당을 이끄는 실세로 남아있습니다.

▶초콜릿 왕, 대통령 되다= 페트로 포로셴코(51)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젊은 지도자입니다. 1990년대부터 사업을 시작해 ‘로셴’이라는 과자생산기업을 손에 쥐었습니다. ‘초콜릿 왕’이라는 별명도 여기에서 나왔죠.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게티이미지)

2009년 우크라이나 외교부 장관, 2012년 경제발전통상부 장관을 지내면서 정계에 서서히 발을 들인 그는 2014년 대통령 선거에서 55%의 득표율로 당선이 확정됐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 상황은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축출된 후인 터라, 포로셴코는 친유럽ㆍ친미국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미국의 바락 오바마 대통령, 조 바이든 부통령과 정기적으로 회담을 하기도 했죠.

아이러니하지만 포로셴코의 개인 자산은 최고통수권자 자리에 오르고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2014년 4월에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억만장자 자산집계에서 포로셴코는 13억달러(1조5000억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는 이 순위에서 사라졌습니다. 빌리어네어 기준인 10억달러 선에서 떨어져버린 것이죠.

트럼프도 빌리어네어 자리를 지키려면 자산 관리에 신경써야 겠습니다. 이미 그는 대선 과정에서 슈퍼팩(Super PACㆍ정치활동위원회)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사재를 털어 캠페인을 펼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손실을 봤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옵니다.

▶재벌 출신 포퓰리스트, 결국 부패로…= 탁신 친나왓(67) 전 태국 국무총리는 원래 통신재벌이었습니다. 평범한 경찰로 근무하던 그는 1987년 IT기술사업을 앞세운 친나왓그룹을 설립하고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 (게티이미지)

국왕이 있는 나라인 태국에서 국무총리는 실질적 통치 권한이 있는 자리입니다. 친나왓은 2001년 총리로 선출된 뒤 2005년 재선에도 성공했습니다. 그는 재임기간동안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실시해 높은 인기를 끌었죠. 예컨대 국민들의 의료비용을 깎아주고 농어촌지역 개발에 지원하는 등의 정책으로 특히 농촌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정치인으로서의 창창한 앞날에 그의 재산이 장애물로 튀어나왔습니다. 그의 친족이 친나왓그룹 주식을 내부거래했다는 의혹이 터져나오면서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것입니다. 포브스가 산정한 그의 자산은 16억8000만달러(1조9000억원) 수준입니다.

친나왓 전 총리는 트럼프에 대해 “나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초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기업인이 정치권에 들어오면 주변이 환기되는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대중들의 가려운 곳, 분노할만한 대목을 콕 찝어 겨냥했던 트럼프의 포퓰리즘적인 면모를 가리키는 듯합니다.

▶임기 중 경제성장, 그러나 인기 없는 대통령= 1970년대 말 칠레에 신용카드라는 개념을 도입한 금융 재벌이 2010년 국가 최고통수권자가 되었습니다. 세바스티안 피네라(67) 칠레 전 대통령입니다. 

세바스티안 피네라 칠레 전 대통령 (게티이미지)

피네라는 중남미 최대 항공사인 란(LAN) 항공, 칠레 방송채널 칠레비시옹(Chilevision), 인기 축구팀 콜로콜로(Colo-Colo) 등의 지분투자로 엄청난 부를 쌓았습니다. 1990년대 군부정치가 종식되면서 정치권으로 나온 그는 2010년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하필 그의 취임식날 칠레 지진이 나 ‘불길함’을 점치는 사람이 많았죠.

칠레는 그의 임기 4년동안 경제성장을 맛봤습니다. 반면 대통령의 인기는 별볼일 없었습니다. 대통령을 바로 연임할 수 없다는 칠레 헌법에 따라 그는 재선에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2018년에라면 도전이 가능할수도요. 현재 그의 자산은 25억달러(2조9000억원) 정도로 추정됩니다.

피네라는 트럼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가을 “공화당이 분열을 초래하는 후보를 냈고, 그가 당선된다면 비극(tragedy)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종의 미’ 거둔 억만장자 정치인은 없나…한계는?= 트럼프도 빌리어네어 대통령으로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그의 전례들을 살펴보니 쉬운 길만은 아닌 듯합니다. 개인 재산도 지켜야 할 테고, 대중의 인기도 얻어야 하고요. 가장 어려운 과제는 ‘친기업’ 기조가 ‘부패’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일 겁니다. 

(게티이미지)

한국에서도 기업인 출신 최고통수권자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경제 살리기’라는 강력한 구호로 당선된 이 전 대통령도 재임 기간 내내 부패 스캔들로 소란스러운 임기를 보냈습니다. BBK 주가 조작 사건, 내곡동 사저 부지 불법 매입 의혹, 청계재단으로 재산을 빼돌렸다는 의혹 등이 뒤따랐죠.

결국 트럼프도 자신이 보유한 막대한 재산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선 과정에서도 1조원 가량의 세금을 회피했다는 의혹이 내내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전례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또 현재 트럼프가 소유하거나 지분을 가진 28개 빌딩 등 자산들이 편법으로 거래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탁신 친나왓이 친족 주식 내부거래로 자국민들의 원성을 산 것처럼요. 물론 이같은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길 바라야겠습니다.

벌써부터 ‘친 트럼프’와 ‘반 트럼프’로 갈라진 미국인데, 트럼프가 자신의 지지층들만을 위한 포퓰리즘으로 나서는 일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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