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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장벽 세운다”는 트럼프, “IT에 국경 없다”는 실리콘밸리…누가 웃을까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이세진 기자] ‘아웃사이더’의 부상은 트럼프뿐만이 아니었다. 선거기간 내내 IT 기업인들에게 친화적이지 않은 발언들을 쏟아냈던 트럼프지만, 재빠르게 그에게 줄을 섰던 ‘테크 부호’ 한 명이 있었다. 페이팔 공동창업자이자 페이스북 이사인 피터 틸(49). 실리콘밸리의 ‘왕따’, ‘이단아’로 불리던 그는 단번에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반면 미국 실리콘밸리의 주류 기업인들은 ‘폭풍 전야’를 맞았다. 부(富)의 파티라도 벌이는 듯 매년 새 억만장자를 배출하면서 반짝이던 이곳이지만 지금은 먹구름이 가득하다. 부동산 재벌 출신의 새 대통령이 혹여나 신사업 성장동력에 재갈을 물릴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공약도 꽤나 구체적이고, 현실화할 가능성도 커서 이들의 고민은 계속 깊어지고 있다.

미국 IT 업계의 혼란을 비집고 어부지리를 기다리는 쪽도 있다. 미국의 경쟁 상대, 중국이다. 중국 기업인들은 트럼프에 실망한 테크놀로지 인재들의 유입을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실리콘밸리 이미지[출처 STEAM Magazine]

▶배팅 대박, 피터 틸 ‘상한가’= “큰 경쟁보다 작은 독점이 낫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피터 틸이 한 강연에서 던진 아이디어다. 큰 시장에서 경쟁에 뛰어드는 것보다 작은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게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통찰이었다. 실제로 그는 대부분의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이 경쟁적으로 힐러리에게 줄을 설 때, 혼자서 트럼프를 ‘작게 독점’ 했다. 기부금액도 125만달러(14억7000만원) 정도로, 그의 재산 27억달러(3조1800억원ㆍ포브스)에 비하면 크지 않은 규모였다.

결과는? ‘나홀로 배팅’에 피터 틸 홀로 대박을 쳤다. 그 스스로가 잘 알려진 동성애자이면서 ‘인종주의자, 성차별주의자’인 트럼프에게 줄을 섰다는 이유로 그를 이단아 취급하던 이들은 충격에 빠졌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테크 엘리트들이 이제는 피터 틸이 필요하게 될지도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피터 틸은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연단에 올라 “게이인 것도, 공화당원인 것도, 특히 미국인인 것도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해 큰 호응을 얻었다. 트럼프와 그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자이고, 정부 지출이나 부채, 본토 바깥에서 벌어지는 전쟁비용 등에 매우 회의적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은 점이 많다.

특히 IT 업계의 뜨거운 감자인 ‘망 중립성(net neutrality)’에 대한 입장도 ‘반대’로 같다. 망 중립성이란 인터넷망으로 유통되는 데이터가 내용이나 크기에 관계없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즉 동영상이든 사진이든 텍스트든 모든 콘텐츠가 동등하게 여겨진다. 반대로 망 중립성에 반대하는 이들은 각각의 콘텐츠에 서로 다른 수준의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와 피터 틸은 이쪽 의견에 동조한다. 

망중립성 이미지

이는 ‘개방성’을 일차적으로 내세우는 IT 업계 대다수의 시각과 배치된다.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확장성이 무한대인 인터넷 공간에서 국경도 장벽도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IT 산업의 본질을 제한하는 논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경과 장벽을 좋아하고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트럼프가 동조하기에는 ‘너무나’ 진보적인 아이디어다. FT는 “테크놀로지 기업들은 망 중립성 이외에도 정부 감시에 대한 협의, 외국에 나가 있는 현금 자산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며 트럼프 행정부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암시했다.

또 최근 피터 틸이 트럼프의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합류했다는 소식까지 더해졌다. 외신들은 인수위에서 그의 역할을 점쳐보면서 그를 아웃사이더 취급했던 실리콘밸리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잘 나가던 주류, 주커버그ㆍ쿡ㆍ베조스 ‘하한가’= 잘 나가던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은 일단 몸을 낮추고 상황 파악 중이다. 실리콘밸리는 정치적 의견표명에 소극적이었지만 유난히 이번 선거에서만은 “트럼프 반대”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가 당선되자 패닉에 빠진 상태다.


피터 틸과 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는 ‘특수관계’에 있다. 페이스북의 첫 번째 외부 주주가 피터 틸이었고, 현재도 그는 페이스북 이사로 재직 중이다.

마크 주커버그는 틸의 정치적 견해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 그와의 관계를 단절할 가능성도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멕시코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들을 차단하기 위해 장벽을 세우겠다는 트럼프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내 인트라넷에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품는 것이 페이스북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주커버그는 트럼프 당선 직후 페이스북에 “우리에게는 세계를 개선할 능력이 있고, 의무도 있다”는 말을 남기면서 긍정적인 기운을 돋웠다. 하지만 트럼프에게 축하 메시지를 덧붙이지는 않았다.

팀 쿡 애플 CEO는 트럼프와 가장 세게 부딪힌 테크 부호 중 한 명이다. 지난 2월 FBI가 수사를 위해 아이폰 잠금 해제 툴을 요구했지만 애플이 이를 거부한 것이 발단이었다. 애플은 사용자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원칙을 고수했지만 트럼프는 “애플 제품을 보이콧하라”며 지지자들에게 호소했다. 실리콘밸리에 대한 미국 서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려는 정치적 행동이었다. 
 
실리콘밸리의 애플 매장

트럼프는 또 애플이 중국에서 가동하는 아이폰 제조공장에 대해서도 비난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 공장들을 모두 본토로 회수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공언했다.

팀 쿡은 트럼프 당선 후 “개인적으로 어떤 대통령을 지지했는지에 관계 없이, 확실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려면 함께 걸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내용의 공개 서한을 직원들에게 발송했다. 애플은 클린턴 캠프에 53만달러(6억원)을 투척해 트럼프에게 이미 미운털이 박혔다. 향후 관계 개선 가능성이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의 표정도 어둡다. 베조스는 트럼프 당선으로 금전적 손실을 봤다. 세계 4위 부자인 베조스는 아마존 주가 하락으로 하루 사이 수십억 원의 자산을 날렸다. 아마존 시가총액은 대선 직후 사흘 만에 24조원이 떨어졌다가 서서히 회복하고 있는 분위기다. 상업용 드론이나 우주개발 등 신사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해 왔던 아마존이 ‘구식’ 기업인인 트럼프 임기 동안 어려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아마존이 개발한 상업용 드론 [출처 아마존]

트럼프는 지난해 말 아마존과 제프 베조스에 대한 ‘막말’로 구설수에 올랐다. “아마존이 세금을 제대로 안 냈으며, (자신에게 비판적인 신문인)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해서 아마존을 돕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대해 베조스는 “트럼프의 언행이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어부지리 노려볼까’ 중국 부자들= 실리콘밸리가 트럼프 찬성과 반대로 갈려 혼돈을 빚는 사이 중국 부호들은 ‘어부지리’를 노려볼만 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리옌훙 바이두 회장은 최근 중국에서 열린 세계인터넷대회 연설에서 “트럼프에게 실망한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이 중국으로 온다면 문은 열려 있다”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포츈(Fortune)은 “중국은 이미 미국에서 비자를 받지 못하고 거부당한 능력 있는 기술자들을 섭외하고 있다”며 “트럼프의 미국이 이민자 정책을 강화한다면 인재를 유치하는 경쟁에서 밀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리콘밸리와 트럼프가 부딪히는 틈을 비집고 인재를 키우는 데 앞서나갈 수 있다는 해석이다.

중국에게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겠다는 트럼프의 공약도 중국 부호들에게 큰 위기감을 조성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미 중국도 임금이 많이 오른 상태라 글로벌 기업들은 최근 공장들을 방글라데시나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부호들 입장에서는 공장의 미국 본토 이전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관세가 더 큰 문제다. 그러나 트럼프로서도 중국산 농산물이나 공산품의 가격을 높이게 되면 그의 지지 기반인 서민들에게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jinlee@heraldcorp.com
그래픽. 이해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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