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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기업 ‘삥뜯기’ 대물림…20년후 바뀐건 대통령과 총수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민상식ㆍ이세진 기자] 박근혜 정부가 대기업을 압박해 반강제적으로 모금한 ‘미르ㆍK스포츠재단’ 사건을 보면 20년 전 ‘일해재단’ 비리가 떠오른다. 20년이 지났지만 대통령이 권력을 이용해 기업들로부터 거액을 갈취하는 이른바 ‘삥뜯기’(돈뜯기)는 여전하다. 단지 대통령이 전두환에서 박근혜로 바뀌었고, 어떤 대가성을 바라고 돈을 낸 기업의 총수 자리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물림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핵심 중 하나인 미르ㆍK스포츠 재단과 일해재단 사건은 절묘하게 닮았다. 재벌기업의 강제 기금 출연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재단 이사장과 이사진에 특정 인물을 앉혀 관리하면서 사실상 재단을 사유화한 점도 같다.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 당시 통일민주당 초선 의원이었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출처=노무현 사료관]

특히 일해재단은 장세동(80) 전 청와대 경호실장이, 미르ㆍK스포츠재단은 안종범(60ㆍ구속)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수시로 모금상황을 챙기면서 기업들을 압박한 점도 동일하다.

일해재단은 전두환(85) 전 대통령이 1983년 발생한 미얀마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유가족과 스포츠 유망주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아호인 일해(日海)를 따 설립한 장학재단이다.

이후 1984년 3월부터 1987년 12월까지 재벌기업으로부터 기부금 명목으로 598억5000만원을 뜯어냈다.


재단 모금에는 1987년 당시 공기업을 제외한 자산 규모 상위 20대 그룹 가운데 16곳이 참여했다. 재계 순위와 일해재단 기부금 액수는 거의 비례했다. 그룹 규모가 클수록 출연금도 많이 낸 것이다.

장세동 전 청와대 경호실장의 책 ‘일해재단’에 따르면 당시 국내 최대 기업집단이었던 현대그룹의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51억5000만원을 재단에 건넸다.

재계 2위와 3위, 4위였던 대우그룹의 김우중 전 회장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럭키금성(현 LG그룹)의 구자경 명예회장이 각각 40억원, 45억원, 30억원을 출연하며 뒤를 이었다.

이어 재계 순위 5위 쌍용부터 10위 롯데까지 각 그룹은 20억원 안팎의 금액을 냈으며, 재계 순위 10위 이하는 10억원 정도를 출연했다.

일해재단 비리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이 지난 후 박근혜 정부는 미르ㆍK스포츠재단을 통해 한류문화 확산과 스포츠 사업 지원 명목으로 기업 53곳에서 총 774억원을 조성했다. 일해재단 사건때와 마찬가지로 재계 1위 삼성그룹에서 8위 한화그룹까지 기업집단 서열은 출연금 순위와 일치한다.

경제개혁연대 등에 따르면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기부한 금액이 가장 많은 기업은 삼성그룹으로 총 204억원을 냈다. 이어 재계 2위의 현대자동차그룹이 128억원, SK그룹이 111억원, LG그룹이 78억원, 포스코그룹 49억원, 롯데그룹 45억원, GS그룹 42억원, 한화그룹 25억원 순이었다. 기업집단 순위 10위 이하의 그룹은 10억원 안팎의 출연금을 냈다.


20년 전 일해재단에 반강제적이거나 혹은 대가성으로 돈을 건넨 20대 그룹 중 9개사(삼성ㆍ현대ㆍSKㆍLGㆍ롯데ㆍ한화ㆍ 한진ㆍ두산ㆍ대림)는 미르ㆍK스포츠재단에도 또 다시 기부금을 냈다.

그 사이 기부금 출연을 결정한 그룹의 총수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바뀌었다. 대표적인 기업이 현대그룹이다.

일해재단 당시 재벌들의 모금을 주도한 전경련 회장은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 그는 1988년 11월 ‘5공 비리 청문회’때 일해재단 모금과 관련해 증인으로 불려나와 “내라고 하니까, 내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 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버지 고 정주영 회장이 20년 전 청문회에 증인으로 선 것처럼, 현대의 적통을 잇는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은 다음달 6일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슈퍼리치 ‘한국 100대 부호’ PC화면 캡처

▷ 슈퍼리치 ‘한국 100대 부호’ (링크 가기)

이번 청문회에는 정몽구 회장 외에도 지난해 7월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날 각각 면담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출석한다. 이들 총수들과 달리 다른 날 박 대통령을 독대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명단에 포함돼 있다.

법조계 안팎에선 기부금 출연 기업에 특혜가 주어졌는지 등을 밝혀내지 못한 일해재단 비리 수사를 거론하면서,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낸 재벌기업의 대가성 여부를 밝혀내는 게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해재단 비리 수사 당시 10억원 이상 기부금을 낸 그룹 총수가 줄줄이 소환조사되고, 장세동 전 경호실장 등이 구속됐지만, 검찰은 전두환 정권이 기금 출연을 강요했다는 뚜렷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검찰은 일해재단 수사 결과 발표 당시 “모금 과정에서 강제성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기업들에 대한) 특혜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내놨다. 이후 일해재단은 순수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로 명칭이 바뀌어 운영되고 있다.

mss@heraldcorp.com

그래픽. 이해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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