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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트럼프 정책, 맥시코에 좋을 것”…말 바꾼 슬림, 왜?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이세진 기자] 미국 대선이 치러지고 세계 경제는 그야말로 ‘예측 불가능’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중에서도 대선 전후로 하루 만에 자산이 6조원(51억달러) 가량 ‘증발’해 버린 억만장자가 있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이 거부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것이라는 시장의 평가가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트럼프가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그 멕시코에서 제일 가는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76ㆍ자산 55조원)의 이야기입니다. 

카를로스 슬림

언론들이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서 ‘하루만에 6조원을 잃은 사람’으로 그를 조명하는 동안, 슬림은 조국 멕시코와 자신의 사업에 닥친 위기를 기회로 바꿀 논리를 고심했나 봅니다. 1일(현지 시간)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슬림은 “트럼프 당선이 멕시코에게 득이 될 것이다”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비쳤습니다. 이 이야기에 어떤 의미가 담긴 걸까요?

앞서 대선 기간 때로 잠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트럼프와 슬림은 계속해서 적대적인 말들을 주거니 받거니 했습니다. 슬림은 멕시코 인들에 대해 막말을 퍼붓는 트럼프에 “사업적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했죠. 트럼프도 슬림이 최대주주로 있는 뉴욕타임즈(NYT)가 자신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를 지속한다며 “슬림이 대선에 개입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슬림은 또 민주당 클린턴 후보의 가족 재단인 클린턴재단에 최대 50만달러(5억8000만원)를 기부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뉴욕타임즈 2016년 5월15일 보도 [출처=The Stranger]

그러나 트럼프 당선 후, 슬림은 이제 트럼프의 미국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합니다. “멕시코에 득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이러한 판단에서 나온 말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현지 언론 멕시코 뉴스 데일리는 3일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성공한다면, 멕시코에게는 ‘판타스틱(fantastic)’할 것”이라며 카를로스 슬림의 말을 보도했습니다. 이어 그는 “트럼프는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출신 인력들을 매우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면서 “(트럼프가 공약한) 사회 기반시설 건설 작업에 가장 숙련된 사람들이 이들이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밝혔습니다.

이는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라며 라틴계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하겠다던 트럼프의 ‘막말’과 그의 주요 공약 사이의 모순을 지적한 것으로도 해석됩니다. 대선 전날에도 슬림은 트럼프의 모순을 간파했죠. 트럼프의 말대로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에게 최고 35%에 이르는 징벌적 관세를 부과한다면 미국의 전반적인 소비재 가격이 급증하고, 결국 경제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의 뒷모습

또 슬림은 “대선 후보로서의 트럼프와 대통령으로서의 트럼프의 모습은 다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예컨대 트럼프가 25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실질적인 공약이 지켜진다면 멕시코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슬림은 오히려 미국을 걱정해주는 여유로운 모습까지 내비쳤습니다. “내가 미국인이었다면 더욱 걱정스러웠을 것이다(I would be more worried if I were an American)”라면서요. “트럼프가 미국의 경제교류를 닫고 보호무역주의로 이끌게 되면, 미국은 국제적 리더십을 잃게 될 것”이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자산 9.2%가 하루만에 증발해 버린 것과 관련해서는 “대선 결과가 향후 투자 계획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텔맥스텔레콤, 아메리칸모빌 등 그가 이끌고 있는 회사들이 라틴 아메리카, 미국, 유럽 등에 분산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멕시코 페소화 가치가 12%나 떨어졌더라도 멕시코에만 ‘몰빵’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안정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입니다. 

카를로스 슬림

슬림은 멕시코에서 ‘최고 부자’라는 타이틀 외에도 ‘자선 사업가’로서 존경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올해 그는 ‘아쁘렌떼’라는 무료 모바일 교육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교육 접근성이 낮은 멕시코의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인데요. 교육보다는 생업에 떠밀린 멕시코 저소득층 학생에게 무료로 교양ㆍ예술ㆍ직업훈련 등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죠.

그래서인지 현지에서 그의 인기도 높습니다. 슬림이 오는 2018년 멕시코 대선에 출마하길 바라는 여론도 다시 지펴지고 있습니다. ‘부동산 재벌’ 트럼프의 당선도 그 계기 중 하나입니다. 일각에서는 억만장자 대통령이 멕시코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슬림은 “전혀 생각이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내 소명은 정치인이 아니라 기업가인 것 같다. 게다가 나는 트럼프도 아니기 때문”이라며 강하게 못박았습니다.

정치 지도자가 될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그의 막대한 자산과 경제활동은 이미 멕시코 경제를 이끌고 있습니다. 멕시코가 트럼프라는 ‘위기’를 직면하고 이를 헤쳐나가는 데 카를로스 슬림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주목됩니다. 그는 벌써 겁에 질린 멕시코인들의 마음을 토닥이고 있는 것 같네요.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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