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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부역 억만장자’ 로레알ㆍ코흐ㆍBMWㆍVW…과거는 못 속인다
2017.10.24 14:59
[SUPERICH=윤현종ㆍ이세진 기자] 전쟁범죄기업. 줄여서 전범기업(戰犯企業)이라고도 부르죠. 침략 전쟁에 쓰는 군수품 또는 살상무기를 만들어 팔며 전범 행위에 가담한 전력을 가진 회사입니다.

우리 시민들이 최소 한 번 이상 들어봤을 전범기업은 대부분 일본 업체입니다. 대표적인 자이바츠(財閥ㆍ재벌 <우리가 쓰는 ‘재벌’이란 단어의 유래이기도 합니다>)로 각인돼 있는 미쓰비시ㆍ미쓰이ㆍ스미토모 계열기업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들 회사가 ‘덴노(天皇ㆍ천황)’에 충성을 바치던 시기. 우리나라 반대편에선 독일 나치 정권에 부역한 서구 기업과 그 창업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 또는 회사명으로 살아있죠.

우선 로레알 그룹(L‘Oreal Group)입니다. 화학자 외젠 슈엘러(Eugene Schueller)가 1907년 모발 염색제를 개발하면서 시작된 로레알은 프랑스 친(親) 나치 파시스트 그룹 ‘라 카굴’(La Cagoule)과 인연이 깊습니다.

라 카굴은 반(反) 유대, 반공 파시스트 집단이었습니다. 슈엘러는 라 카굴에 대한 재정적 지원 뿐 아니라, 로레알 본사에서 미팅을 주선해주기도 했는데요. 2차 세계대전 후에는 함께 라 카굴에서 활동했던 나치 인사들을 로레알 대표이사로 앉히기도 했습니다. 

로레알 상속자 부부였던 고 앙드레 베탕크루(좌)와 릴리안 베탕크루


아버지 슈엘러로부터 막대한 부(富)를 상속받은 이는 지난 달 사망한 ‘50조 부호’ 릴리안 베탕쿠르입니다. 로레알의 유일한 상속자였던 그의 남편도 라 카굴 소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문기업 로레알의 막강한 힘(?) 덕에 슈엘러와 앙드레 모두 엄벌을 받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원성은 자자했습니다. 베탕쿠르가 로레알을 살리기 위해 택한 방법은 정면돌파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남편의 나치 협조 혐의를 인정하고 사과합니다. 각종 사회사업도 벌입니다. 1987년 ‘베탕쿠르 슈엘러 재단’을 설립해 프랑스와 개발 도상국들을 위한 문화ㆍ자선사업을 펼쳤습니다. 유럽 최고 바이오 의학 연구자에게 매년 주는 ‘릴리안 베탕쿠르 생명과학상’도 이 재단이 지원합니다.

사실 베탕쿠르는 ‘조용한 오너’로 유명했는데요. 로레알 그룹이 동물 실험 등으로 구설에 올랐을 때도 아무 해명을 하지 않았죠. 하지만 전범기업 전력 앞에선 달랐습니다. 조용한 그를 앞에 나서게 했습니다. 묵과보단 사과하는 게 효과적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베탕쿠르의 노력 덕분에 로레알은 친 나치 이미지를 만회, 지금껏 세계 최대 화장품 회사 지위를 유지 중입니다.


코흐 형제 [헤럴드DB]


미국에도 나치에 부역한 부자 가문이 있습니다. 2명 합계 110조 원(982억 달러ㆍ포브스 기준) 넘는 자산을 쥔 코흐(Koch)형제 집안입니다.

둘은 현재 석유ㆍ자원 기업 코흐인더스트리를 이끌고 있는데요. 이 회사 창업자이자 형제의 아버지인 프레드 코흐(Fred Koch)의 과거 행적은 나치와 관련 있습니다. 이는 미국 탐사저널리스트 제인 메이어(Jane Mayer)가 2016년 출간한 책 ‘다크 머니(Dark Money)’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다크 머니는 과거 부자들이 돈을 써 바뀐 역사 가운데 논쟁 여지가 있는 것들을 다뤘습니다. 


프레드 코흐와 그가 세운 코흐 인더스트리 로고


책에 따르면 코흐 집안은 네덜란드 계 미국 이민자 가정인데요. 프레드 코흐는 나치를 위해 거대 오일 정제 공장 짓는 것을 도왔습니다. 특히 이 사람은 나치 시절 히틀러의 열성팬이었으며, 그가 지었던 오일 정제 공장이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직접적 명령으로 지어진 사실도 드러나 공분을 샀습니다.

히틀러 품에서 큰 자동차 회사들도 있습니다. 독일 기업 폭스바겐(VW)과 BMW가 대표적입니다. 폭스바겐은 나치 정권의 자동차 대중화 정책으로 1937년 문을 열었죠. 


폭스바겐의 비틀(좌)과 페르디난트 포르셰 [헤럴드DB]


이 회사 창업자 페르디난트 포르셰(Ferdinand Porsche)는 히틀러 요구에 따라 중산층이 1년을 저축해 살 수 있는 대중적인 차 ‘비틀(BEETLE)’을 만들었습니다. 포르셰는 자동차 이외에 독일제 탱크 생산에도 적극 협조했습니다. 전후 폭스바겐은 전문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했죠.


귄터 크반트 BMW 창업자 [헤럴드DB]


BMW는 나치를 도왔던 사실이 밝혀진 후 적극적으로 사과한 회사입니다. 창업자 귄터 크반트(Günther Quandt)는 나치 당원이었는데요. BMW는 1930~1940년대 전쟁으로 인해 항공기 엔진 수요가 늘자 강제수용소 재소자들을 강제로 동원했습니다. 전쟁 군수품도 독점하며 클 수 있었습니다.

이 회사 경영진은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2007년 나치 협력 행위를 담은 보고서를 자체적으로 펴내며 반성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BMW 군수 공장에서는 5만 여명이 강제 노역을 했고, 월 평균 80여명이 죽었습니다. 회사는 “깊이 후회한다”며 사과했습니다. 강제 동원에 희생된 노동자를 기리는 추모관도 세웠습니다. 1999년엔 강제 노역자 보상을 위해 독일 정부와 기업들이 세운 ‘기억ㆍ책임ㆍ미래 재단’에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BMW는 창립 100주년이던 지난 해 3월 홈페이지를 통해 또 한번 머리 숙였습니다.

지난 11일로, 우리나라 강제징용피해자 가운데 4명이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서 이긴 지 두 달이 흘렀습니다. 그간 미쓰비시 중공업은 사과는 커녕 고의적인 시간 끌기로 3년 간 재판 진행을 방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치 부역자만도 못한, 이웃 나라 전범기업의 민낯입니다. 소송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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