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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제살인’ 비극 왜 못막나… “결별선언 거부는 위험신호”[취재메타]
‘이별 통보 피해자 살인 혐의’ 20대 의대생 남성, 지난 8일 구속
‘교제 폭력’ 검거 피의자 수 매년 증가 추세… 지난해 55% 급증
범죄심리 전문가들 “피해자 보호 중심 입법 노력 수반돼야”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이별을 통보한 피해자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 20대 의대생이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편집자주

취재부터 뉴스까지, 그 사이(메타·μετa) 행간을 다시 씁니다.

[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의대생인 20대 남성이 이별을 요구한 피해자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교제 살인’이라는 참극이 또 다시 되풀이된 가운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제폭력 범죄 등을 예방하고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입법적 노력 등의 실질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대되고 있다.

서울 강남역 인근 고층건물 옥상에서 이별을 요구한 피해자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 의대생 최모(25)씨가 지난 8일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신영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살인 혐의를 받는 최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열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 6일 오후 5시께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근처 건물 옥상에서 교제하던 피해자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당초 서울 서초경찰서는 ‘옥상에서 남성이 투신하려 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최씨를 끌어냈는데, 이후 “약이 든 가방 등을 두고 왔다”는 최씨의 말에 현장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숨진 피해자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곧바로 최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 부검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의 사인은 흉기에 의한 과다출혈인 것으로 조사됐다.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헤어지자”는 피해자의 말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최씨가 범행 2시간 전에 경기도 화성의 한 대형마트에서 흉기를 미리 구입하고 피해자를 불러내는 등 범행을 준비한 정황을 파악했다.

이번 사건 외에도 교제하던 관계에서 비롯된 강력범죄 사건이 잇따르면서 그 심각성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경남 거제에서 20대 남성이 교제하다 헤어진 피해자를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앞선 3월에는 신상정보가 공개된 김레아(26)가 경기도 화성의 한 오피스텔에서 이별 통보를 하러 찾아온 피해자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고 피해자의 모친에게도 중상을 가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지난해 5월에도 30대 남성 김모 씨가 서울 금천구의 한 상가 지하에서 자신을 교제 폭력 혐의로 신고한 40대 피해자를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 남성은 같은 해 8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는 12월 김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3월 발표한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 분석’ 보고서 따르면, 2023년 1월 1일부터 12월31일까지 교제 살인으로 숨진 여성은 49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미수에 그쳐 살아남은 여성도 15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보고서에서 “실제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사건을 포함하면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한 여성의 수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교제 폭력 사건도 2020년 이후로 매년 증가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교제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총 1만3939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대비 55% 급증한 수치다. 연도별로 보면, 2020년 8951명, 2021년 1만538명, 2022년 1만2828명 순차 급증하고 있다. 교제 폭력 신고 건수도 급격히 늘어났다. 2020년 4만9225건에서 2021년 5만7305건, 2022년 7만790건을 기록하다 2023년 7만7150건을 기록해 최고치를 찍었다.

다만 교제 폭력으로 구속된 건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피의자 1만3939명 중 2.22% 수준인 310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집계됐다. 앞서 대검찰청이 지난해 교제 폭력 사건 등에 관해 구속수사 원칙을 강조하며 사건처리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실제 피의자에 대한 구속 건수는 이 같은 ‘교제폭력 범죄 엄정 대응 방침’에 미치지 못한 셈이다.

교제 폭력 관련 법안도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오는 29일 임기 만료가 예정된 21대 국회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1대 국회에는 교제폭력 범죄에도 임시조치 등 피해자 보호제도를 적용하게 해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권인숙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등 총 4건의 관련 법안이 계류돼 있지만, 법사위와 여성가족위 등 각 소위에 머무른 상태로 본회의 상정 및 통과가 요원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9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교제폭력이나 교제살인 등 이번 사건과 같은 강력범죄에는 법이나 제도 미비뿐만 아니라 다양한 복합적 이유가 원인이 됐을 것”이라며 “우선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사실상 이별 통보를 그 이전에 했는데도 자해 위협을 하겠다는 피의자에게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닌 측면이 보인다”며 “일단 이별을 결심을 했을 때 그게 상대방으로 하여금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는 위험신호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사건에 대해 “피해자 스스로가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 보려고 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없다”며 “정확하게 자기가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를 인식하고 주변에 신속히 도움을 청하거나 신고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교수는 이번 사건을 두고 “단순히 교제 중 일어난 폭력이 아니고, 사실상 관계가 끝난 이별 상태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분석했다. 이어 “이별 이후에 일어나는 건 대부분 스토킹인데, 스토킹처벌법이 생기기는 했어도 피해자 보호가 효율적으로 잘 안 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신변보호가 잘 되면 신고도 많이 할 텐데, 더 엄중하게 신변보호 등 집행을 보장하는 부가적인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피해자 보호 중심의 입법적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피의자 인권을 보호하는 추세이다 보니 여전히 생명의 위험에 노출된 피해자들이 많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 범죄심리학과 공정식 교수도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연인 관계에서 교제를 하다 이별을 통보하는 경우 가해자가 과도하게 격분해 상대를 살해하는 사건들은 통상 심리학적으로는 그 가해자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특성, 예를 들면 편집증적 성향, 과도한 집착이나 의존이라고 하는 요소들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형태로 표출이 되는 것”이라며 “이별을 통보하고자 하는 상대방이 공격적인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반드시 공개된 장소에서 만나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사회적 측면에서는 어릴 때부터 교제나 이별 등에 관한 조기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며 “누군가와 교제를 하다보면 헤어질 수도 있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그런 것들에 대한 미성숙한 인식들이 결국 이 같은 비극적 사건을 야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특히 “연인 간 문제에 주변 사람들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이 퍼져 있다”며 “이별을 하더라도 연인들이 다시금 각자의 삶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조력하는 주변 사람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y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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